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음식을 먹는 일이 빈 밥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미각을 통해 정신적으로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삼으려는 취향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육신의 건강에는 분명히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즐겨 마시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활 가운데서 만약 이런 기호품이 없었다면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들의 안뜰은 삭막하고 어두워졌을 것이다. 술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취하게 하는데, 차는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한다. 차의 고전(古典)인 육우(陸雨. ?∼804)의 <다경(茶經)>에 『울분을 삭이는 데는 술을 마시고, 혼미(昏迷)를 씻는데는 차를 마신다』고 지적했듯이, 술이 시끄러운 집합을 위해 발명된 것이라면, 차는 한적한 모임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술은 아무데서나 아무하고도 마실 수 있지만 차는 그럴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마시는 그 분위기와 이웃을 가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임어당(林語堂)은 그의 <다론(茶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차의 성질 중에는 우리들을 한가하고 고요한 인생의 명상에로 이끄는 힘이 있다. 어린애들이 울고 있는 곳에서 차를 마신다거나 시시덕거리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나 정치를 논하는 무리들과 더불어 차를 마신다는 것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 차를 마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차의 성질 자체가 맑고 향기로운 것이므로 비오거나 흐린 날에는 제맛이 나지 않을 뿐더러 그 분위기가 적합하지 않다. 차를 즐겨 드는 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지만 함께 마시는 사람의 수가 적어야 차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객(客)이 많으면 시끄러워지고 차의 은은한 매력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도 그의 <동다송(東茶頌)>에서 밝히고 있다. 『차를 마시는 법은 객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수선스러우면 아늑한 정취가 없어진다.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서 마시면 좋고, 서넛이 마시면 유쾌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면 나눠먹이와 같다』 나는 홀로 거처하기 때문에 혼자서 차를 마실 때가 많다. 혼자서 드는 차를 신묘(神)하다고 했지만, 그 심경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선(禪)의 삼매(三昧)에서 느낄수 있는 선열(禪悅), 바로 그것에나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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