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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비.별꽃 2017. 7. 11. 21:21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 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