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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비.별꽃 2016. 10. 20. 10:39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때 이불 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 여행기 한 질을 넣고 갔다

남편은 실업한 문학 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 가재를 먹고

그 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젊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연이는 밤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또 떠나리,

아! 피사,아시시,니스,깔레,,,

구석 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 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 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 문 정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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