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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해오라비.별꽃 2014. 1. 9. 22:52

  
믿음에 대하여 / 최문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피가 날 때까지 믿는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을 걸어오는 반 토막짜리 사랑도 믿는다.
고장난 뻐꾸기를 믿는다.
뻐꾸기 울음과 정오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먹먹하게 가는귀먹은
그녀의 믿음은 끝에 어떤 것도 들여놓지 못한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던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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