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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다행이고

해오라비.별꽃 2017. 2. 23. 10:09

 

 

 

딸아이가 다녀갔다. 몇 달만에 집으로 온 아이

그 ㄴ ㅓㅁ의 공부가 뭣인지 젊은 아이들 잡는다 싶어서 마음이 짠하지만

얼마전에 다녀간 아들말이 ' 외로운 투쟁 없이 우리네 삶이 윤택하겠습니까?'

그렇지.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청춘이려니..

그 외로운 청춘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마음만은 청춘이지..그런 자위의 말로 늙음을 비껴갈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머물러 있지 않고 무언가를 저지르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허무는 그 과정이 청춘일 수 밖에 없노라..한다.

 

아들이 다녀간 자리는 늘 말끔하다

어쩌면 남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서 그렇게도 말끔해 정리해 두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딸아이는 다르다

가는 곳마다 자신의 벌거벗은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다

흩어진대로. 어지러운대로.그게 대수냐는 듯이.

한 때는 그것을 고쳐 볼 요량으로 참 많이도 싸웠다

제자리에 두는 것이 그리고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정리 정돈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우냐고..

언제부턴가 흩어짐이..어지러움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그렇게 아이를 닥달했냐 싶은 생각에

이젠 널부러진 그 편안함이 자신을 닥달하는 아이의 자유로움이다 싶은 마음에까지 닿았다

 

아들의 가지런함이 주는 보이지 않는 얽매임 같은 것이 오히려 더 이 에미의 마음을 저민다

딸아이처럼 저렇게 자신을 마구 뒤집어 속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스스로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싶은 객쩍은 생각을 해 본다

살다보면 자신에 대해서도 마땅찮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물면 자식이라도 그 속을 다 알기는 어려운 법이다

또한 자신을 모두 드러내기가 쉬운 일이던가

 

내가 발을 다친 것이 아니고 팔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바쁜 5월이 아닌 3월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오른쪽 팔이 아니라 왼쪽팔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아침에 별꽃님과의 통화중에 그 양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지. 다행인 것으로 핸들을 돌려 잠시 주차하며 생각해 본다

 

건강한 육신과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철저히 가고 있으니 내아들이 얼마나 다행이고

매사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와 타협해 가며 자신을 지켜가는 내딸이 얼마나 다행이고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것들과 부딪히며 배워가며 가는 것이 삶이다

산기슭의 애두른 꼬부랑 길도 더러는 걸어가 보면 진작에 보지 못했던 자연과의 만남이

있듯이 오늘 아침 딸아이가 떠난 흔적들을 보면서 그리고 별꽃님과의 통화를 하면서

내마음을 그저 두서없이 남겨본다. 엄마이기 전에 아직은 화장을 하는 여자의 마음으로..  

 

 

한자 쓰고 눈물디고 두자 쓰고 한숨디니

자자행행(字字行行)이 수묵산수(水墨山水)가 되지고나

져님아 울고쓴 편지니 눌너볼가 하노라

 

세월의 고개 넘자니

눈물로 지샌날이 더 많은 거 같았지만

스스로 겨워서 그린 저마다의 풍경화

눈을 감고 있자니

그 풍경화에 春花가 가득...

 

미워도 다시 한 번

자식이란 그런 존재?

그 자식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중이다

산 넘어 산 그 거구태산을 넘다보면

소도 만나고 중도 만나고

다치고 넘어지고 여물어져 단단해지겠지

아이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다시금 기도하며..

 

 

 

 

 

 Lex Yeux Fermes(눈을 감고) / Andre Ga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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