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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돌아온 날 밤(도종환)

해오라비.별꽃 2017. 11. 26. 18:34

 

(옥수수밭 옅에 당신을 묻고)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 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 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은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눈물

마음 둘데없어 바라보는 하늘에는

떨어질듯 깜박이는 눈물같은 별이 몇개

자다 깨어 보채는 엄마없는 우리 아가

울다 잠든 눈썹 속에 젖어있는 별이 몇개

 

              밤

나의 이 그리움 당신이 가져가소서

나의 이 외로움 당신이 가져가소서

그러나 이 아픔 차마 못드려 강물에 버렸더니

밤마다 해일이 되어 내게로 옵니다,

 

           억새풀

당신이 떠나실때 내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뒤 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간 마음들은 이런 저녁 모두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 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이 지상의 그리움

가고는 오지 못할 임인 줄 알면서도

하루도 몇 번 하늘 끝 달려갔단 돌아오는

아직도 다함 없는 이 지상의 그리움

헤어져 가던 길 눈 내려 아득한데

새벽이면 길을 쓸고 진종일 기다려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지상의 그리움

살아서 못뵐 임인걸 알면서도

바람 불면 살아나고 별 뜨면 보고지운

아직도 살아있는 기약없는 이 그리움

 

        죄를 짓고 돌아온 날 밤

죄를 짓고 돌아온 날 밤

밤을 새워 울었습니다,

아침마다 당신으로 마음을 열고

날 저물면 당신 생각으로 마음 걸어 닫으며

매일 매일 당신 생각만으로 사는데도

이렇게 흔들리며 걸어가는 날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울지 않고

무너지는 나의 마음 때문에 울었습니다

죄를 지은 손 하나를 잘라버리고라도

깨끗한 몸으로 당신께 가고 싶었습니다

제 몸이 불꽃일 때 물길의 마음으로

언제나 당신이 다독이며 오심으로 제가 살았습니다,

제가 손바닥만큼 당신을 사랑할 때

당신은 한아름의 크기로 저를 보듬어 주시어

제가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흔들리는 밤이 많습니까

죄를 짓고 돌아온 날 밤

당신이 그리워 울지 않고

제 마음이 야속해 울었습니다,

 


 

평생을 원수처럼 지내는 이들도 많은데

어쩌면 이리 그리워할 수 있음이 차라리 났지 않을까?

이리 그리운 사람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걸까?

팔십 년대 참 좋아하는 시였는데,

시를 읽으며 마음이 몹씨 복잡하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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