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지만 / 심여수
포항 죽도시장에서 펄펄 살아 날뛰는 오징어 꼬리를 잡자
뻘대가 척 손목을 잡고 늘어지던 날
힘도 좋다.싱싱하기도 하다. 빛깔도 좋다
이 넘의 꼬랭지가 이리도 환장하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데
한 해의 월력 한 장.. 일력 한 장이 덩그러니 남은 꼬랭지에서
누더기처럼 펄럭이는 내가슴은 모르겠다.
내가 아니다 시치미를 떼고 싶어진다
남은 물기 꼭 짜낸 무말랭이처럼 꼬들해진 모양새로
안으로 익어가는 나의 세월의 소리가
납작납작 먹게 좋게 썰어놓은 소리 내지 못한 탓에
삶의 살점 위에 단맛 편편히 뿌리는 재주 없는 탓에
낡은 몸에서 나오는 낡은 말들로 인신공격을 당해도
'할 말 없음' '무효'라고 당차게 반항 할 수가 없다
나도 누군가처럼 내안에서 새로 생긴 말이라고 우기며
다시 교정할 수 없지만 얼마나 눈물겨운가
소국처럼 곱게 시들어져 걸음마다 허물어지는가 싶어도
온통 정적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어도
살다보면 안스러움으로 손을 잡아가며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한없이 쳐다보게 되는 우리들
북풍처럼 몰아치는 괴로운 세월을 지불하고나면
댓가로 주어지는 남풍을 만나게 되는 생이다
산 슬픔을 위에 죽은 슬픔마저도 지난 사랑처럼 궂은 장마비처럼 내려도
살아 움직이는 지금이 좋다
이 겨울에 내가 키울 수 없는 화초보다 잠들지 않고 푸른싹을 틔우는 잡초가 좋다
가슴에 닿아 가볍게 부서지는 사연이라도 좋다
일 년이 끝나고 무엇이 다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지만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열차를 끊고 끊임없이 달리는 지금이 좋다
지난날들이여 사랑했노라!
다가올 날들이여 또 그렇게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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