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기

9월 그리고

해오라비.별꽃 2017. 9. 2. 10:22

 

 

 

 

9월이 온다/박이도

 

9월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할 심사

중심을 잃고 떨어져갈

적, 황의 낙엽을 찾아

먼 사원의 뒤뜰을 거닐고 싶다

잊어버린 고전 속의 이름들

내 다정한 숨소리를 나누며

오랜 해후를, 9월이여

 

양감으로 흔들리네

이 수확의 메아리

잎들이 술렁이며 입을 여는가

 

어젯밤 호숫가에 숨었던 달님

혼사날 기다리는 누님의 얼굴

수면의 파문으로

저 달나라에까지 소문나겠지

 

부푼 앞가슴은 아무래도

신비에 가려진 이 가을의 숙제

 

성묘 가는 날

누나야 누나야 세모시 입어라

 

석류알 타지는 향기 속에

이제 가을이 온다

북악을 넘어

멀고 먼 길 떠나온 행낭 위에

가을꽃 한 송이 하늘 속에 잠기다

 

 

 

 

 

구월/목필균

 

 

9월이 오면

앓는 계절병

혈압이 떨어지고

신열은 오르고

고단하지 않은 피로에

눈이 무겁고

 

미완성 된 너의 초상화에

덧칠되는 그리움

부화하지 못한

애벌레로 꿈틀대다가

환청으로 귀뚜리 소리 품고 있다

 

 

 

 

9월/문인수

 

무슨 일인가,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 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9월/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9월/이외수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가을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 두겠네

 

 

 

 

9월이/나태주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익는다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서

서서히 물러가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

너는

내 가슴 속을 떠나야 한다

 

 

 

 

 

구월의 나무/심여수

 

한줄기 바람에도

취기로 몰려오는 달

누군가의 가슴에서 키우던

멜랑멜랑한 씨앗 하나 터트려

어느해 구월에 나무 한 그루 심었었지

그 향기 코끝을 스쳐

혀끝에서 향기롭게 쓰러질 때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건 없다는 걸 알았지

시간의 다트 화살을 무심히 날려 버렸더라면

아, 구월은 어땠을까

출처를 잃어버린 눈먼 시간들은

저 멀리

들판의 벼이삭 사이로 불어오는

달착지근한 구월의 바람을 좋아해

황금으로 일렁이는 자유를 좋아해

상처조차도 입속에서 발화되어 토해내며

만찬의 시간을 준비하는

사랑스런 시간이란 그래서 아름답다

그대여!

혹시 뭐 빼놓은건 없지?

이제 구월의 나무로 돌아갈 시간

마음을 말릴 생각이 없이

나, 無로 돌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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